“여행할 수 있는 관계,

어쩌면 그게 이상적인 통일이 아닐까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해도 될까?

안녕, 노무현리더십학교 1기를 졸업한 조경일이라고 해. 일단 내 고향은 함경북도 경흥군이야. 보통 ‘아오지’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 알더라고. 한국에 온지는 올해로 17년 됐어. 와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국회에서도 일했어. 내 정체성이 탈북민인 만큼 평화통일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해보고 싶어.

어떻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해, 적응도 쉽지 않았을 텐데

많이 들은 질문이야. 내가 한국에 온 게 만 16살 때였는데, 엄마가 먼저 와있는 상태였어. 덕분에 용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지. 당장 일터에 나가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어. 1년 정도 미친 듯이 공부해 대학까지 들어갔는데, 남한 청년들의 삶이 정말 어렵더라? 그리고 난 사람들이 다 통일을 원할 줄 알았는데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부분은 관심이 없었어. 나에겐 정말 충격이었지. 대학을 다니면서 비정규직, 반값 등록금과 같은 이야기를 접하니 취업난 걱정에 남한 청년들은 통일보다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면서 자연스레 현실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어.

북한과 남한 청년들 사이의 생각이 많이 달랐나봐

엄청나게 달라. 북에 있을 땐 통일은 생각의 대상이 아니었어. 판단하거나 의견을 낼 것도 아니었지. 그냥 당연한 거였어. 물론 거기서 말하는 통일은 북한식 통일이긴 했지만 말이지. 그래도 방법을 떠나 북한 주민들의 소원은 통일이었어. 한국은 ‘통일? 그게 뭔데?’ 이런 분위기였지.

정치를 통해 바꾸고 싶은 게 있을까?

‘난 지금 이대로가 편한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통일해야 돼’라고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로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해.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런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정치도 그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고. 그리고 난 분단의 당사자잖아? 당사자가 간절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더욱 관심을 안가지게 될 거야. 내가 간절하게 외쳐야 공감하는 사람들도 생겨날 거야. 나도 그래서 계속 외치려고 해.

노무현리더십학교는 어떻게 신청하게 된 거야?

일단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고, 리더십에 대해 배우고 싶었어. 내가 2004년에 남한으로 넘어왔는데 그때 대통령이 노무현이었어. 사실 그땐 사람들과 언론으로부터 엄청 욕을 먹고 있었어. 나는 그걸 보면서 민주주의 사회가 참 좋다고 생각했지. 북한이었으면 곧바로 처형당했을 테니까. 그러다가 2007년에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 회담을 하는 걸 봤어.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왔을 때도 흑백 TV로 봤었는데, 남한에서 볼 때도 감격이더라.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멋있어 보였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지도자였다고 생각해?

역사와 사회에 대한 통찰이 깊은 분이었다고 생각해. 나는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말, 해야할 말을 한 정치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거의 유일했다고 보거든. 누군가는 과격하다 했을 수도 있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아주 바람직한 통찰이었다고 봐. 앞으로도 노무현리더십학교에서 노무현의 리더십, 노무현의 생각, 노무현의 정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

마침 지금 대선 시즌이잖아? 미래 우리나라의 지도자에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할까?

노무현 대통령처럼 세상을 통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세상을 통찰하려면 우리 사회와 역사를 봐야 하는데, 난 여기서 절대 빠져서 안되는 게 분단 해소라고 생각해. 분단이나 통일에 대해 어떤 고민도 없는 사람은 리더로서 자질이 없는 거지. 나는 양극화도 그렇고 사회 갈등도 그렇고 모든 문제의 근원이 기형적인 분단에서 비롯됐다고 보거든.

그리고 한 개인을 통해 근본적인 통찰을 했으면 좋겠어. ‘서민의 어려움을 해소하겠다’ 이건 그냥 당위적인 말에 불과하잖아? 예를 들어 밤 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을 보며 치열한 경쟁 사회의 문제를, 명문대와 대기업 중심의 사회를, 노동자가 뼈빠지게 일해야 하는 문제를 통찰했으면 좋겠어.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도 정치인들이 ‘사람’을 보지 못해서가 아닐까.

뭔가 가슴 울리는 말이다. 국회에 취업하는 건 어땠어? 출신에 대한 편견도 있었을 것 같아

거창한 얘기들을 많이 했는데, 사실 요즘 세대는 통일보다 취업이 더 어려운 것 같아, 나도 그렇고. 취업을 하려면 자기소개서를 내야 하잖아? 나는 항상 내 이야기를 다 썼어. 고향에 대해 쓰고, 내 꿈에 대해서도 썼지. 그런데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거야. 워낙 취업이 힘든 시대니 그러려니 했는데, 나중에 혹시 출신이 문제일까 싶어 북에 관한 내용을 다 빼봤어. 신기하게 면접보러 오라는 연락이 바로 오더라. 역량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는 걸 알아 기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함께 들더라. 인생의 반을 북에서 살았는데 그걸 잘라내면 온전한 나는 없는 거니까.

김두관, 김영춘 의원실에서 일했다고 들었어

나는 모집공고가 나면 그 국회의원에 대해 먼저 찾아봐. 우선 이름, 포털에 이름을 검색하면 그 의원에 관한 일반적인 정치기사들이 나와. 그걸 읽고 다음엔 이름과 ‘북한’을 검색해. 그럼 그 정치인이 북한에 관해 한 말들이 나오는데 분단 문제에 대해 이 사람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 마지막은 이름과 ‘탈북’이야. 그러면 이 정치인이 탈북, 탈북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 김두관 의원은 원래 경남 사람인데 김포로 이사를 왔다는 거야. 그 이유가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래. 난 그걸 보고 ‘이 사람은 필히 통일에 관심이 있고, 필히 탈북민인 나한테도 관심이 있을 수 있다’ 싶었지. 김영춘 의원은 ‘통일 대통령’이 꿈이라는 거야. 두 의원실에 지원할 땐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썼어.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통일과 탈북민에 대해 관심이 크더라.

계속 낙방을 거듭하다 보면 다른 길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될 것 같아

지금도 계속 하는 고민이야. 꿈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통일에 기여하는 게 내 소명이라 생각해. 지금도 탈북민은 한국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해. 그래서 탈북민들은 신뢰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야 해. 그런데 나중에 통일이 되면 어떨까? 우린 북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거야. ‘우리가 힘들게 버틸 동안 배불리 잘먹고 잘 살았냐?’란 말을 듣게 되겠지. 탈북민들에겐 이게 참 괴로운 문제야. 그래서 나는 고향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고향 친구들을 만나도 ‘너가 그래도 고향을 위해 나름 열심히 살아왔구나’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