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선거 떨어지고 해양수산부 장관에 취임하기 전에는, 정치토론 사이트를 하나 만들어 보려고. 그래서 노하우 홈페이지를 토론구조에 맞도록 프로그래밍을 새로 했어요. 전체 토론방이 있으면 상위 토론방, 하위 토론방, 또 그 밑에 하위 토론방을 두어서 토론의 중간 쟁점, 전제된 사실이나 전제된 쟁점의 진위에 관해서 먼저 토론을 거치고 최종적 결론에 도달하는 이런 토론 모델을 개발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우리 한국의 토론 문화가 아주 중요하다. 상대방을 때려눕히는 토론, 격파하는 ‘격파 토론술’이 아니고. 논리의 모순이나 옳은 논리를 계속 찾아나가면서 결국 바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토론, 이런 부분들이 사회적으로 잘 훈련되고 개발되어야 한다. 크고 작은 조직의 리더들은 토론을 훌륭하게 해야 됩니다. 토론 공화국 아니면 대(大)토론의 시대, 토론 문화의 시대, 머릿속에 이런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노무현의 비전이거든요. 그 비전은 정책 공약집이 아니고 ‘정치란 무엇인가’ 했을 때 기능적으로 정치가 뭐하는 거냐는 뜻일 수도 있거든. 정치란 무엇을 하는 작용인가, 기능이 뭐냐 이거죠. 쉽게 풀어서 얘기하면 외부의 적으로부터 구성원의 안전을 보호하고, 뭐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말해서 국방·치안·경제의 주체로서 또는 정책 집행자로서, 그죠? 정책 주재자로서 또는 주체로서 경제, 나라 살림살이 하고.

그 다음 기능이 뭐냐, 조정입니다. 이것은 군주 사회에도 있는 거죠. 뭔가 여럿이 살다보니까 부닥친단 말이죠. 어떻든 사람이 다 개성이 강하지만 한 배를 타고 있는 건 틀림없어요. 지구호에 한 배를 타고 있고, 한국인은 한국호에 타고 있어서 한국의 운명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함께 가야할 길이 있거든요. 아무리 개성이 강한 사람이라도 공동의 운명에 묶여있는 만큼 공동의 목표, 공동의 전략 이런 게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정치는 그 중에서 전체가 지향하고 나아가야 될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거든요. 그게 비전이라는 겁니다.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갈등의 조정입니다. 조정이 오래 반복되어서 법칙성을 가지게 됐을 때 일정한 규율을 만들어서, 법과 제도로 조정이 되지요. 그 외에 법과 제도가 미비하거나, 별로 경험하지 않았거나, 새로운 갈등이 생겼을 때 이때 지도자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직접 개입해서 그 갈등을 조정하는데 그냥 미봉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될 것이라는 미래까지 내다보면서, 하나의 모범을 만들면서 사회에 새로운 불문율을 만들어나가는 거죠.

새로운 조정일수록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먹, 공권력이 없기 때문에 신뢰가 뒷받침돼야 된다.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건 한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최고 권력자이어야 비로소 그 말을 담보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합리적인 기준 속에는 다른 신뢰의 담보가 없기 때문에 아직 한국 사람들은 최고 권력자라야 신뢰합니다. 그니까 이 조정의 과정들을 정교하게 반복해서 축척해 나가는 것이 사실 이 시기 한국의 지도자의 역할이고, 아주 중요합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폭탄테러가 났을 때,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우왕좌왕할 때 대통령이 그 자리에 나타나서 결정하는 모습.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 결정이 갖는 권위 때문에 방향이 잡히고, 안정이 됩니다. 이런 지도자의 상징적 효과, 이런 것들에 대해서 가장 깊이 연구해야 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상징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던져서 아주 합리적이면서도 창조적인, 그러면서도 상징적인 지도자의 행위를 통해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나가는 이런 모습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데.

그리고 아주 어려운 문제, 우리가 풀어야 될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단순히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거쳐야 될 과정들이 있고 해소해야 될 불만과 저항들이 있다. 이것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힘을 만들어 나갈 것이냐, 그것을 전략이라고 얘기하는 거죠. 나는 어떤 공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과정)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프로세스가 승패를 좌우한다. 태도가 승패를 좌우한다. 미래에 임하는 태도, 프로세스, 관계된 사람들과의 갈등을 푸는 때의 태도 이런 것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