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지금 여러분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수능시험을 마치고 이제 진학하려는 대학의 시험 일자에 맞춰 논술고사를 준비하고 있는 전국의 고3 수험생 여러분에게 인사에 앞서 먼저 위의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의례적인 인사치레로 여러분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기보다는 제가 던진 질문을 통해 여러분과 대화하고 싶기에 이런 화제를 꺼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보다는 정해진 교과과정에 따라 거의 정해진 내용만을 익히고 기억해 왔습니다. 흔히들 '천편일률적'이라고도 하고 '획일적'이라고도 하는 그런 말들이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었지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가 당연히 재미도 없고 '억지춘향식'의 시간보내기에 급급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이제 달라집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여러분의 생활이 더욱 풍요롭게 바뀔 수 있습니다. 힙합과 테크노 음악에 관한 잡지를 읽을 수도 있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게임에 몰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도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마음 한편에 늘 불안이 도사린 가운데 잠시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사실이지 않겠습니까?
'대학을 간다고 공부는 제쳐두고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여러분이 되물을 수도 있을 테지요. 그렇습니다. 또 다른 경쟁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고, 어쩌면 삶 전체가 '경쟁의 연속'이라 할 정도로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할 수 있는 세상은 분명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러분에게 과거와는 달라진다고 단언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시간활용의 주체가 여러분으로 바뀐다는 것 때문이지요. 고교 시절까지는 학교와 선생님들께서 미리 짜둔 일과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묶어둘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그 시간활용을 여러분이 직접 할 수 있다는 점이 예전과는 너무도 다른 점입니다. 하루에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장차 필요한 어학연수를 할 수도 있으며, 일과와 일과 사이에 잠시 틈을 내서 DDR의 흥에 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힘들게 벌어서 소중하게 쓰겠다'는 생각이라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도 있겠고, 알뜰하게 배낭여행의 재미도 만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논술고사를 준비하느라 아직은 '정해진 시간으로부터의 풀림'을 완벽하게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머릿속으로는 이제부터 바로 그 계획을 세우십시오.
또 한 가지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 사회와 전반적인 문화가 여러분에게 음악을 권하고 음료를 권하며, 인터넷 탐험을 권하고 춤을 권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군요.
그건 다름이 아니라 '책 읽기'입니다.
사람이 세상살이를 하면서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더 많이 알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간접경험의 힘을 빌릴 수밖에요. 전적으로 독서를 통해 충족하는 외의 방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강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조금만 더 보탠다면, 우선은 국내외 작가들의 소설 작품을 접하는 것이 여러분의 앞으로의 독서 방향을 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믿기에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의 인생 경험을 소개할까 합니다.
저는 불행하게도(?) 대학진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어렵게 독학에 독학을 거듭하여 사법시험을 치루고 판사와 변호사를 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고 있지만, '공부'에 대한 목마름은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서'를 택했고 아직 부족한 것이 많기는 하지만 여러분과 어떤 대화를 나누더라도 나름의 논리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독서의 힘'이었다는 사실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진부하기는 하지만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책 권하는 자신'이 되기를 거듭 부탁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인생의 고비에 서 있습니다. 대학을 선택하고 전공을 결정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시점에 있습니다. 큰 관문이었던 수능은 이미 치렀고 남은 몇 가지 과정을 밟기는 해야겠지만 여러분의 마음은 일종의 설렘으로 들떠 있을 수도 있겠지요. 더구나 '뉴 밀레니엄'이라 칭해지는 새로운 천년의 출발과 여러분의 의미 있는 시작이 맞물려 있으니 그 감격은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간의 노고에 대한 따뜻한 격려는 물론이거니와 '아름다운 도전'에 대한 축하의 말씀도 아울러 전하면서 고3 수험생 여러분에게 몇 마디 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 1999년 11월, 노무현 후보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