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가요? 뉴스레터 담당자는 요즘 카펜터즈의 노래에 빠져있어요. 퇴근 후나 주말에 방에서 듣고 있으면 지친 마음도 위로되고 좋더라고요.

갑자기 음악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노무현시민센터에 새로운 정기 프로그램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노무현시민센터 정기문화전. 이름하여 ‘우리 곁의 사람들’ 인데요. 한 달에 한 번씩 주제를 정해 우리 삶을 표현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에요.

3월의 주제는 ‘음악🎧’입니다. 스스로 곡과 가사를 지어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를 초대해 좋은 음악도 듣고, 음악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하는데요. 음악가, 작사가, 음악감독, 작가 등으로 활동중인 조동희 씨가 음악을 안내합니다.

문화전의 첫 손님은 정제된 가사를 담담한 목소리와 선율로 펼치는 음악가 정밀아 씨 입니다. 소개를 위해 유튜브를 통해 노래를 찾아봤는데요. 뉴스레터 담당자는 너무 좋아 오전 내내 듣고 있었습니다. 3월이 되니 봄이 돌아온 게 느껴지는데요. 노무현시민센터에서 함께 음악도 듣고, 희망의 이야기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3월 한 달, 토론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님께 편지를 보내드려요. 정치개혁을 주제로 한 첫 편지는 이관후 박사가 보내왔습니다.

👨‍🎓 이관후 (정치학자)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가 지금처럼 어려워 보이는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종종 ‘사정 정국’이라는 말이 회자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검찰 정부’라는 말이 노골적으로 쓰인 적은 없었습니다. 정부는 정작 해야 할 일에는 무책임하고 안 해야 할 일에는 열심입니다. 정부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가 실수를 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상황입니다.

 

정당정치는 그 어느 때보다 퇴보했습니다. 여당은 정당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습니다. 여당이 무기력해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 대선에서 여당은 자기 후보를 내지 못하고 밖에서 후보를 빌려왔습니다. 빌려 온 후보가 대통령이 되자 스스로 선출한 대표를 황당한 방식으로 쫓아냈고, 신임 당대표를 뽑는 과정은 비민주적인 수준을 넘어서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야당은 검찰 정부의 탄압을 막아내는 데도 벅차 보입니다. 정부의 실정이 계속 이어졌지만, 외교·안보·에너지 위기·경제 등에서 대안 야당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야당 탄압의 칼자루를 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에, 당대표를 비롯해 야당 의원들을 겨냥한 검찰의 옥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지지율 반등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 내년 총선까지 비슷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선거의 승패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입니다. 기후위기·저출생·고령화·지방소멸 등 굵직한 국가적 아젠다가 쌓여있지만, 정부와 여당 야당 등 어디서도 팔을 걷어붙이고 이런 문제들의 해결에 나서는 정치인을 보기 어렵습니다. 협치가 무너진지는 오래입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인 야당의 대표가 1년 가까이 한 번도 회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책과 입법에서 대화와 토론 타협과 합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몇몇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쉽게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다원성의 공존에 기반을 둔 정치의 복원은 요원합니다.

 

우리는 민주화 30년 만에 왜 이런 정치를 맞게 되었을까요? 정치양극화와 포퓰리즘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니 우리 역시 그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아닌가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공통된 분위기 속에서는 나라마다 대응하는 방식들이 다르고 최소한의 건전성과 상식의 선이 지켜지는 곳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반민주적 행위들에 대해 의회가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차근차근 잘잘못을 따져 바로잡고 있고, 서유럽과 북유럽의 국가들은 극우의 바람 속에서도 정당정치의 기반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과거 광장의 촛불로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퇴조 속에서 우뚝 선 등대처럼 한국이 빛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참으로 초라하기만 합니다. 일을 하는 정부, 정부를 견인하거나 때로 비판하는 여당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야당은 없고 적대적 싸움만 남았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적대적 양당정치를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국회의원 선거구제, 비례성이 낮은 의석 구성, 국민 과반의 동의 없이도 승자가 권력을 독식하는 대통령 선거제도 등의 제도적 구조적 원인을 지적합니다. 민주주의와 좋은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부재하다고 말입니다.

 

민주주의와 정치를 복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능하면 제도를 놓아둔 채로 정치 행태와 문화를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제도는 안정성과 지속성 속에서 유지 발전되고 국민들은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판단과 실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거나 어떤 근본적인 벽에 부딪쳤을 때 우리는 제도 개혁이라는 대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기 말 선거제도만 개혁할 수 있다면 권력의 반이라도 내어놓겠다고 말한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이 참으로 이해가 가는 요즘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 우리 선거제도가 그렇게 나쁩니까?

원래 선거제도에는 선악이 없습니다. 그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필요한 선거제도가 있을 뿐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잘 운영되는 제도가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거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 역시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습니다. 장점은 선거제도가 간단하고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쉽고 지역 책임성이 높다는 데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안정적인 양당제가 구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점은 사표가 많이 생기고 적대적 정치가 강화되며 정치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선거제도를 운영할 때는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정치인과 유권자가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을 보면 장점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 반면 단점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것은 ‘공개적인 정책 경쟁을 하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양당체제’인데 실제로 나타난 것은 ‘내가 잘하기보다는 상대만 깎아내리면 이기는 선거에서 정책은 실종되고 어떠한 타협도 대화도 없는 적대적 양당제’입니다 국회의원들의 지역 책임성과 반응성이 높아지기를 바랐는데 실제로 나타난 것은 국가적 아젠다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고 지역 예산 따오기 경쟁만 하고, 시장군수 광역의원 기초의원과 동네 민원을 경쟁하는 행태만 보입니다.

 

또 하나 심각한 것은 소선거구제 아래에서 수도권 의원들이 자꾸 늘어나면서 지역 균형발전이 어려워지고 지방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정부 시절과 비교해 수도권 국회의원은 24명이나 늘었고 지방은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한국의 국회가 일부러 지방소멸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수도권 국회의원들이 한정된 국가 자원을 최대한 자기 지역구에 가져오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많은 자원이 수도권에 뿌려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사회는 점점 분화되고 다양화되고 있는데 그러한 이해관계와 이슈들을 반영하는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전체 의석에서 1/3 정도는 공천이 곧 당선이니, 지역 내 경쟁자 견제와 당내 계파 싸움에 열을 올립니다. 지역주의의 망령은 참으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2002년에서 한 세대가 지났는데도 한국의 정치 수준이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아시면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개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중대선거구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비례대표의 확대 같은 제도적 변화에서도 장점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 대표성이 약화되고 정당의 규율이 강화되거나, 당내 파벌 정치가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모든 선거제도는 장점과 단점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제도를 채택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제도의 변화를 모색하는 이유는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제도를 만들고 선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부작용을 줄이고 다른 장점을 조금이라도 살려보려는 시도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 혐오를 벗어나 정치에서 희망을 찾는 것

제도는 스스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결함이 많은 제도라도 그것을 선택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 장단점을 잘 알고 노력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비례대표 비율을 늘리는 선택을 했다고 할 때, 그 결과는 정당의 유력 정치인이나 특정 계파가 비민주적으로 국회의원 후보자들을 줄 세우는 현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반대로 비례대표의 구성이 다양해지고 지역주의가 약화되고, 정당 안에서 또 정당 간의 건전한 정책경쟁이 활발해지고, 국가적 아젠다에 관심을 갖는 국회의원들이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제도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닌 것이죠.

 

가장 나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치의 가능성을 폄하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제도를 바꾸면 뭐해 어차피 악용하려는 놈들이 다 망쳐놓을 게 뻔한데’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는 선거제도를 바꿀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애초에 정치라는 통치방식 자체를 의심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런 혐오가 더 심해지면 우리는 정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통치하는 것을 조만간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선택은 언제나 인류에게 재앙을 몰고 왔습니다.

 

바야흐로 정치 혐오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 정치 무관심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서적 양극화가 극대화되어서 이제는 서로 밥도 먹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같은 정치공동체에서 서로 공존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는 어떤 정치도 불가능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라’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들의 뜻은 상대를 무작정 욕하고 혁명으로 적을 타도하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말 그대로 정치에서 희망을 버리지 말고 정치를 혐오하거나 정치에 무관심하지 말고, 민주주의의 힘을 믿고 도전해보자는 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혐오와 무관심이야말로 시민들의 적이 가장 원하는 것일 테니 말이지요.

 

지금이야말로 우리 정치가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선거제도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그것은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계기이자 도구이며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과도 바꾸고 싶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번 3~4월은 정치개혁 선거제도 개혁의 시즌입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결의안을 만들고 국회의원 전원이 법안 논의에 참여하는 전원위원회가 가동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집중적으로 듣고, 국민들이 참여하는 공론조사도 실시될 예정입니다. 정치개혁을 바라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도 집중되는 시기입니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노력이 없이는 선거제도가 잘 바뀌지 않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에게 더 많은 개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이 앞장서 주실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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