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이 마을이 되고, 그 마을이 다시 사람을 키워내는 곳. 여름의 봉하는 그렇게, 한 사람의 흔적을 따라 많은 마음이 자라나는 곳이었습니다.
뒷자리에 손녀를 태우고 달리시던 자전거.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 16기 장학생들은 어쩌면 대통령님의 손주 같은 존재 아닐까요?
그분이 품었던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이제는 청년이 되어, 다시 그 나라를 위해 바로 서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이 모습을 보셨다면,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셨겠지요.
동시에 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는, 과연 노무현 대통령님이 그토록 염원하셨던 모습에 다가가고 있을까. 다양한 꿈을 품은 이 청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더욱 노력해야 함이 절실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곳, 봉하마을만큼은 그분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희망을 보았습니다.
“대통령님~ 나와주세요”라는 부름에 응답할 때, 쓰고 나가셨다는 모자를 보고 마음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 모자를 쓰고 369번이나 문을 여셨다지요.
우리가 대통령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부를 수 있었던 공간이 또 있었을까요? 가장 높은 위치에서 늘 낮은 자세로 사람을 바라보셨던 분. 그래서 그 따뜻한 겸손이 우리들 마음속에 이다지도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창을 통해 스며든 여름빛은, 그분이 머물던 시간처럼 따뜻하고 고요했습니다. 대통령의 집은 아직도 사람 사는 온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지난 3월, 발대식에서 '버킷리스트'를 적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왕 적는 거라면 마음껏 상상해 보자며,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해외연수를 전액 장학으로 다녀오기'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제 안의 꿈을 스스로 알게 된 그날 이후 저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이번 달, 호주로 전액 장학 연수를 떠나게 됩니다.
이렇듯 ‘노무현 장학생’이란 이름은 제가 또 다른 꿈을 펼 수 있게 해준 든든한 뿌리였습니다. 또한 49인의 청년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얼마나 멀리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 존재인지 느꼈습니다.
캠프가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가지를 뻗어 나가겠지만, '노무현 장학생’이라는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자부심이 될 것입니다.
청년들처럼, 여름의 빛도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나뭇잎 사이를 조용히 비집고 들어와,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곳에 가만히 닿는 볕뉘.
그렇게 스며든 한 줄기 빛은, 어떤 마음을 오래된 어둠에서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시선은 언제나 빛이 닿지 않던 곳에 머물렀습니다.
틀 안에서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실천했던 그 진심.
그 빛을 기억하는 우리는 오늘도 그 따뜻한 흔적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